- 조부 때부터 화혜를 만드는 것이 가업으로 전승계보가 뚜렷
보유종목 | 화혜장(靴鞋匠) | ||
지정일자 | 2010년 09월 20일 | 문의번호 | 051-292-2224 |
지정분류 |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7호 | 보유자명 | 안해표 |
특이사항 | 상세주소 | 사하구 감내1로155번길 66-2 |
우리 전통신발인 화혜(靴鞋)는 원래 화(靴)는 목이 있는 장화형태의 신발이고, 혜(鞋)는 목이 짧고 운두가 없는 신발을 일컫는 것이라 하여 별도의 장인으로 구분하였으나 현대에는 이 두 가지 기술을 통칭해 새롭게 붙여 화혜장(靴鞋匠)이라 한다.
고려는 장인의 기술이 지극히 정교하여 그 뛰어난 재주를 가진 이는 다 관아(官衙)에 귀속되었다는 『고려도경(高麗圖經)』의 기록으로 미루어 고려 시대는 각 부문의 장인들이 국가의 체계적인 제작 활동을 펼쳐 나갔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시대에 간행된 『경국대전(經國大典)』을 보면, 중앙 관청에 화장은 16명, 혜장은 14명이 있었음을 알 수 있고, 『대전회통(大典會通)』 경공장(京工匠) 본조에도 화장과 혜장이 각각 6명이 배속되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조선 말기까지는 전통신의 제작이 활발하였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이후 신분제의 붕괴와 고무신과 서양 구두 등 공장 제작 신발의 보급으로 전통 가죽신의 명맥은 거의 단절되는 상태였다. 이에 문화재청에서는 화혜를 제작하는 전통적인 기술을 계승하기 위해 무형 문화재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화혜장은 2010년 9월 20일 부산광역시 무형 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되었다.
화혜장 보유자 안해표는 조선말기 조부 때부터 대대로 전통신인 화혜를 만드는 것을 가업으로 삼아온 전승계보가 뚜렷하다. 즉, 조부는 1880년대에 사대부와 관리들의 신발인 흑혜를 제작하였으며, 부친 역시 가업을 이어받아 평생 전통 신을 만들었고, 안해표는 부친으로부터 12세 때인 1962년부터 전통신발 제작 기능을 전수받기 시작하여 1969년부터 본격적으로 가업을 잇고 있는 등 전승계보 및 전통양식 계승 부분이 인정된다.
또한 조부와 부친이 사용하였던 1920년대의 전통 화자본, 신본, 밑창본, 사구단지, 작두망치, 신골, 송 곳과 바늘, 창뚤이판, 자 등의 사용도구를 그대로 물려받아 사용하거나 보관하고 있고, 흑혜(黑鞋), 당 혜(唐鞋), 어름혜, 목화(木靴), 태사혜(太史鞋), 아혜(兒鞋, 여아용 돌잡이 신), 제혜(祭鞋) 등 대부분의 전통신을 제작하는 등 화혜 분야의 전승자임이 확인된다.
화혜장 보유자 안해표는 오늘날 산업화된 사회의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평생을 오로지 화혜 제작을 생업으로 삼아 외길을 걸어온 투철한 장인 정신을 가지고 있으며, 그 기능도 뛰어나다. 더구나 부인과 2명의 아들 등 전승자들이 모두 가족들로 구성되어 있고, 이들의 기능도 우수할 뿐 아니라 화혜 제작 기능의 전승을 위해 합심하여 노력하고 있는 점도 크게 평가할 할 만 하다.
따라서 안해표는 화혜장의 전승계보가 뚜렷하고 화혜 제작의 전통적인 제작방법을 충실히 지켜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능이 우수하며, 자신만의 독자적인 제작 방법을 보유하고 있어 전통 신발 제작 기능의 전승·보존 및 활성화를 위해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존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전통 신발 제작기술을 이어가고 있는 부산시 지정 무형문화재 ‘화혜장’안혜표씨의 전통 신발 전수관이 지난 2011년 6월 행정안전부의 ‘향토핵심자원 시범사업’공모사업에 선정되면서 확보한 국비와 시비 및 구비를 합해 총 4억원으로 건물 69.88㎡를 리모델링, 전수관에는 공방과 전시실을 갖추고, 관광객들을 위한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화혜장[靴鞋匠] & 전수관 |